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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상식
2009.01.18 12:03

피사로의 편지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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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루시앙에게

퐁투아즈를 지나 오스니에서 1883년 6월 13일

[너한테서 편지를 받지 못한 게 벌써 여러 날이 되었구나. 당장이라도 네 편지를 받았으면 싶구나. 뒤랑에게 편지를 써서 내가 파리에서 출발하기 전에 나에게 약속했던 대로 네 하숙비를 보냈는지 물었다. 네가 그 돈을 받았기를 바란다.]

드가에게 네가 르그로의 데생 수업을 듣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단다. 드가가 나에게 그 화가의 영향을 받는걸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주더구나. 방법은 아주 간단해. 그 방법이란 바로 수업 시간에 했던 것을 집에와서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해보는 거란다. 나체화 습작을 시작했다고 가정하자. 집에 돌아와서는 스케치를 하면서 실물을 보며 했던 것들을 기억으로 되살리도록 노력해 보는 거란다. 다음 날 학교에서 습장의 어떤 부분을 마치고는, 집에서 하던 것을 기억을 더듬어가며 계속하는 거야. 조금씩 하다보면 습작을 동시에 마칠 수가 있지. 그러고 나서 비교를 해보는 거다. 어렵겠지만 네가 형태를 얼마나 쉽게 기억해내는지 놀라게 될 때가 올 거야. 그리고 신기하게도 기억을 더듬어가며 하는 관찰이 실물을 직접 보면서 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독창적인 힘을 갖게 될 거다. 이 데생의 결과물이 예술작품이 되는 거지. 거게 바로 네가 그림이 되는 거란다. 이게 맹목적인 모방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지.

[방금 6월 11일에 쓴 네 편지를 받았다. 뒤랑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너를 기다리게 하는 것 같구나. 너한테 수표를 보내겠다고 약속한 게 벌써 일주일 전인데, 어제 그에게 한마디 적어 보냈다. 3,4일 안으로 아무것도 받지 못하거든 통지하게 나에게 알려다오.]

아카데미의 전시회에 대해 넌 꽤나 엄격하게 말하더구나. 네 말이 지당하기 하지만, 여기서 바스티앙-르파쥬와 제르벡스로 프랑스 예술을 평가하듯이 영국 예술을 평가해서는 안 되지. 영국에는 킨이 있다는 걸 기억해라. 그는 전시도 안하고 세속적인 변화에 편입하지도 않잖아. 그걸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니.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골수까지 부패해서는 하나의 기술, 즉 눈을 속이는 기술 밖에는 없지.
[네가 두 명의 이름을 얘기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더구나. 마크 피셔가 뒤랑의 대리인인 마리오트의 친구였단다. 어쨌든 마크 피셔가 사업 관계로 그를 알고 있었어. 우리 작품을 모방하는 화가 중 하나임에 틀림없을 거다. 왜냐면 그 사람이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 작품보다 더 좋고 더 잘 그렸다고 하더구나. 난 늘 그가 누군지 알고 싶었는데, 분명 그를 만나기도 했을 거야. 네가 어디서 그림을 그리던 간에, 앞에서 내가 했던 조언을 따르도록 해라.

액자를 위해 표구없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잊어버렸었다면 며칠 안에 해놓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있는 곳을 오래 전에 떠났어야 한다고 내가 말했었잖니. 데생 수업이나 다른 걸 하면서도 영어를 배울 수 있어. 돈을 벌 수 있는 자리를 찾아보도록 해라. 사업을 빨리 배울 수 있는 자리 말이다. 뒤랑하고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 사람 요즘 별로 상황이 안좋아 보이거든. 집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돈을 마련할 수가 없는데, 거기다가 뒤랑이 우리 그림을 1200 프랑에 주기를 거부했단다. 도통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게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니 슬픈 일이야.

잘 있거라, 사랑하는 아들아. 네 어머니도 너에게 몇 줄 적어 보낼게다. 네 여동생도 그렇고 남동생들도 잘 있단다. 조르쥬는 마음에 안 들어. 반 페이지 쓰는데 30군데나 틀리는 바람에 학교에 남아 있었단다.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지는 격이니,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식구들 모두 너를 생각한단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카미유 피사로.

p.s. 항상 그림을 배우도록 해라.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니. 그림이란 늘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직업이니까 말이야.

"이 판화는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 같아 보이는구나."

1893년 9월 23일, 외르 도(道), 지조르를 지나 에라니에서

사랑하는 루시앙에게.

오늘 아침에 네 판화 작품 '들일(Travaux des chanps)'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단다. 하얀 색 공간에 적절히 배치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봤더니, 처음에 봤을 때보다 훨씬 좋더구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는 게 상당한 매력이 있어. 내가 비판했던 내용의 일부를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비탈면의 푸른색 포도밭은 좋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집은 좀 더 밝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붕도 그렇고...집들의 붉은 색도 조금?... 어쨌거나 마지막 여인의 빨간색 머리쓰개는 반드시 지붕들하고 더 차이가 나게 해야 해... 지면의 푸르스름한 노란색 역시 눈에 무청이나 거슬리는구나... 초목의 경계를 이루는 작은 점들(크로키)이 좀 규칙적인 것 같다... 인물들의 그림자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구나. 첫 번째 구상(크로키)에서 인물들에 대해 내가 했던 비평에는 변함이 없단다. 다른 인물들도 그렇고 말이다.

이렇게 비평은 했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묘한 맛이 느껴지는데 그걸 잃어서는 안 된다. 이 판화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해 볼 수 있게 하는 지침이 될 수 있을 거다. 이 애비는 네가 더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굵은 선들은 거리를 두고 보면 어울리니까 손대지 말거라. 네커치프의 바둑판무늬만 빼고 말이다. 그건 진부하게 느껴지거든... 이상하게도 이 판화는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 같아 보이는구나. 푸르스름한 노란색을 약간만 더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기가 막힐게다. 더 연구해봐야 할 것은 오히려 색조 선택에 있는 것 같구나. 원판을 다시 손보는 건 아주 조심해야해. 왜냐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리는 거라곤 두세 가지 사소한 것들뿐이거든. 나무 사이로 보이는 지붕, 마지막 인물의 빨간 머리쓰개와 아까 말했던 바둑판무늬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원판을 다시 손보는 건 나중까지 기다려보는게 나을 것 같다.
지금 보니 서 있는 인물이 아주 아름답고 앞치마도 멋지구나... 액자가 그래서 그런가,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

이 편지가 다른 편지랑 같이 도착하길 바라면서 쓰고 있단다. 네가 시작할 나무 그림 시리즈가 어떤 거냐?... 만개한 사과나무?... 그 얘기를 해다오. 무척이나 궁금하구나. 티티가 일종의 로맨틱한 분위기의 목판화 '쥘 신부님'을 나게게 보내왔는데, 그 정도 했으면 웬만하다 싶다. 우리가 만드는 시리즈의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분위기는 바껴서는 안될 거다...작품 전체에 아주 신비로운 분위기를 줄 테니까 말이다.

잘 있거라. 너희들에게 키스를 보내며.

사랑하는 아버지가. 카미유 피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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