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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상식
2007.11.21 11:56

도자기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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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님의 칼럼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 

 

일본 사람들은 도자기를 대단히 좋아한다. 필자가 일본 출장을 갈 때는 항상 도자기에 들어있는 술을 사간다. 값은 좀 비싸지만 나름대로의 품격이 있어서다. 예를 들면, 경주 법주. 문배술, 안동 소주 등의 도자기 술이다. 
술을 사갈 때는 술의 역사, 제조 방법, 알코올 도수(度數), 생산지 등의 간단한 지식을 알고 가야 한다. 일본 사람들의 궁금증을 덜어주는 것도 있지만, 딱딱해 지기 쉬운 비즈니스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는 화제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본 사람들은 식사가 끝날 무렵에 어렵게 말을 건넨다.
“저 도자기 술병을 내가 가져가면 안 될까요?”
“그러시지요.....”
그들이 가져간 빈병은 꽃병으로 사용된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도자기 사랑‘의 한 단면이다.


 
‘포로 중에서 도공을 먼저 보내라’
 
우리의 옛 사발, 조선의 사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토록 번성하였던 우리의 옛사발들이 어떻게 왜 묻히고 만 걸까? 조선시대, 고려청자와 동질 흙으로 빚은 다음 얇게 백토를 덧입히고 다시 그 위에 다양한 기법으로 무늬를 넣어 환원번조나 산화번조하는 다양한 분청사기가 시도된다.  고려 상감청자를 이은 상감 분청사기, 귀얄이란 도구로 백토를 성글게 혹은 곱게 입힌 귀얄 분청, 흑색에 가까운 철사 안료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 넣은 철화 분청사기, 도장을 찍듯 일련의 무늬를 새긴 인화문 분청사기, 백토를 입히고 선각하거나 선각한 부분만을 남기고 긁어내는 조화와 박지 분청사기, 백토 물에 아예 덤벙 빠뜨려 백토를 입힌 덤벙 분청사기. 이처럼 다양한 분청사기가 시도되어 조선백자와 함께 활짝 꽃을 피울 때 임진왜란이 터지고 만다.
 
일본은 조선에서 많은 백성을 포로로 끌고가서 강제로 경작에 종사시키고 노예로 매매하기도 했다. 조선 학자로부터 성리학을 배워 새로운 지도 이념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활자를 가져가서 일본 활자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았고, 특히 ≪퇴계집≫ 등 중요한 전적(典籍)을 가져가서 일본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조선인 포로 가운데, 도공(陶工)들의 도자기 제조로 일본 도자기업에 큰 발전을 보았는데 그래서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기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도자기에 흠뻑 빠졌던 도자기 광(狂)이었던 까닭에 그는 조선의 ‘도자기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도공(陶工)들을 붙잡아 오도록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國) 출신의 다이묘(大名)들은, 앞을 다투어 도공들을 일본으로 연행하여 갔다. 그 기술이 사쓰마 야키(薩摩燒), 아리타(有田) 야키, 하기(萩) 야키, 다카도리(高取) 야키 등의 새로운 터전이 되어 오늘날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이끌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침략 전쟁에는 실패하였지만, 조선의 도공을 수 만 명이나 일본에 납치하여 ‘세계적인 일본의 요업(窯業)’이라는 도자기 산업을 도입하고, 부흥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혹자들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지칭할 만큼 우리의 많은 도공이 허망하게 일본으로 끌려가고 가마는 파괴되었으며, 우리의 분청사기는 까마득하게 묻히고 만다.
 
반면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 가 각 지역마다 배치하여 다양한 도자기 굽기를 시도한 일본에선 우리의 도공들에 의한 도자기 문화가 활짝 꽃피게 된다. 18세기,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의례에서마저 수입 자기들을 쓰게 되면서 분청사기는 더더욱 묻히고 만다. 이렇게 묻힌 조선 사발들. 일본이 우리의 도자기를 질투하여 깔아뭉개버린 이름 막사발. 역사의 굴곡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묻혀버림이었든, 외래 문물을 선호하고 소중한 내 것을 도리어 하찮게 여겨 버린 몰지각에 의한 잊음이든, 임진왜란과 함께 조선의 도자기는 그렇게 안타깝게 맥이 끊겨버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 옻칠 기술도 숨어 있다. 일본의 자동차, 카메라 등은 옻칠 기술에 의해서 화려한 광택과 오랜 수명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영어 사전에도 japan의 의미가 ‘옻칠, 칠기, 일본식 세공품’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도자기나 옻칠 공예가 ‘산업발전의 모태’라는 사실을 그들은 오래전부터 꿰뚫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사쓰마 야키(薩摩燒)의 핏줄인 14대 심수관(沈壽官)씨는 수년전 필자에게 “한국의 도자기 제작 기술이 고대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김칫독 만드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들(현, 15대 심수관)을 ‘한국의 김칫독 공장에 보내 2년 동안 연수를 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예기술의 원산지라고 큰소리치던 우리는 어떠한 상황일까? “오늘날 우리는 그 화려했던 과거의 한국 도예의 영광을 재창조하고, 그윽한 문화생활을 다시 향유해 볼만한 시점에 와 있다. 우리에게서 도예기술을 배운 일본이 오늘날 세계 제일의 도예 문화국이 된 것은 모든 국민이 도자기를 ‘사랑’하고, 도자기를 생활필수품으로 생각하여 도자기와 더불어 살았기 때문이다.” (임무근 교수의 도예)
 
그렇다. 우리는 도자기에 대한 ‘기술전수’도, ‘사랑’도 하지 못했다. 만물의 근원은 ‘사랑’이다. 18세기 초에 태어난 독일의 마이센, 영국의 본차이나(bone+china), 일본의 노리타케 등은 ‘도자기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세계 곳곳에서 그 명성을 날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 다함께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일본의 모모야마(桃山)시대를 소개하는 안내판에는 이러한 글이 써있다.
 
<임진왜란ㆍ정유재란(文祿ㆍ慶長의役)후에는 조선으로부터 도래한 도공에 의해서 아가노(上野), 다카도리(高取), 사쓰마(薩摩), 하기(萩), 등 각 가마(窯)가 설치되고 차(茶) 도구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시유도기(施油陶器)가 생산되게 되었다.> 
 
임진왜란 후 한국도공들에 의해서 일본의 도자기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은은하면서도 더없이 고운 자태인 ‘조상의 손길’이  일본 땅에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도예가들은 ‘전통의 보존’과 ‘현대적 계승’이라는 명제수행을 위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도자기의 마을 아이치현 세토(瀨戶)의 구릉지에 ‘도자기 문화의 전당’을 건설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는 무슨 까닭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스스로 외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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