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자신의 얼굴을 자주 혹은 많이도 그린다.
렘브란트는 최초 화공시절부터 화려했던 자신의 전성기를 거쳐 세월의 무게로 드리워진 자신의 초췌해진 모습까지 일생을 70여점의 작품속에 그대로 담았었고, 약 41점의 자화상을 남긴 고흐라는 화가는 고갱과의 불화로 우울증과 자학의 병이 더하여 결국 스스로 귀를 자른 후 고통스런 모습까지 생생히 담기도 했었다.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들이 어디 이뿐이랴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다.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있다.
그 나이 즈음 되면 뚜렷한 삶의 획이 성립될 즈음이고, 그의 얼굴에는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고스란히 녹아 읽을 수 있게 한다는 말일게다.
사람이 태어나서 주변의 수많은 것들을 눈을 통해 메모리 하겠지만 일생을 통털어 가장 보편적이며 많이 관찰하고 보게되는 것이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머무는 눈, 코, 입 그리고 흐르듯 타고 내리는 자태까지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무심결에 우리는 상대의 모습에서 많은것을 읽어 나간다. 오랜동안 사람을 대하다 보면 그의 인상에서 성격과 직업까지도 읽어올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그림이라는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눈이 치켜 올라 간 사람은 성격이 날카로워 보이고, 입이 두툼한 사람은 우둔해 보이며, 목이 굵은 사람은 씩씩해 보이기 마련이다. 검은 눈동자가 클수록 순수하며 착해보이며 넓은 코를 가진 사람보다 얇은 콧볼을 가진 사람이 더욱 샤프해 보이는 것 또한 인물화를 그리기 위한 기본적인 식견이다.
하지만 의외로 스스로의 얼굴을 바라 보는 일은 드문 편인데, 매일 거울을 통해 꾸밀일이 없는 남성의 경우는 이에 참 인색하기까지하다.
일반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오랜시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십중팔구 자신의 내면 속의 상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 아침 세수하고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 속에서 무아의 모습을 찾는건 외람된 개인적인 취향만은 아닐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를 발전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마인트 컨트롤 역시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였다.
의외로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알지 못한다.
내가 내 뱉는 한 마디의 언어 속에 섞여지는 표정과 눈짓 머리와 몸의 움직임과 제스쳐 등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는 필요에 의한 거짓된 제스쳐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를 통해 자기의 중요한 정체성을 찾는 지름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더러의 사람들은 대형 거울 앞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웃고, 언변을 토로하는 등을 연습 한다고 하니 그 만큼의 값어치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본다는건 직업적인 일부만이 가지는 일만이 아니다. 오랜 옛날 부터 많은 인류들은 사람의 얼굴과 몸짓 하나 하나에 담겨진 수많은 언어들을 무의식적으로 습득하여왔고 이를 미술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담아놓고 있지 않은가.
사람의 눈은 인체중에서 사물을 인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대상의 위치와 크기, 색채를 판별하고 모양새에 따라 여러가지 해석될 수 없는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다. 한 아이가 자라나면서 거쳐야 하는 희노애락 속에 숨어있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표정과 몸짓으로 진실된 커뮤니티에 대한 습득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모나리자의 시선은 심령술사의 눈길과 같아 관객의 내면으로 슬금슬금 걸어 들어와서는 이윽고 "너는 무엇이며 오늘 너는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우리는 인생의 무게와 같이 커다란 짓눌려지는 함성에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본 렘브란트는 우리를 조아려 보며 인생의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오며, 고흐는 삶의 쓴맛과 고통, 그리고 꿈결과 같은 희망에 대해 질문하며 성큼 우리의 가슴 한 가운데로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마법과 같은 신비한 시선은 관객에게 내면으로 돌아보게 하는 마법을 가진다. 또한 그러한 신비한 그림은 세계적으로 차고 넘칠 정도로 즐비하며 이 모든 인물화들이 그들의 살다 간 인생의 이야기를 하나같이 우리에게 질문해온다.
하지만 우리의 미술로 눈을 돌려오면 자신의 자화상을 표현한 그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인물화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되어 스스로를 성찰하는 통과의례 처럼 써내려가는 화가의 자서전이라면 공동체적 자아의식을 가진 우리의 사상으로서는 개인적 자아의 개념이 투영되어야 하는 자화상이란 상당히 난처한 부분이었다.
이처럼 동서양의 세계관 차이는 산천의 풍경과 영적 세계의 철학이 내제된 암묵적 신화, 설화와 교화 혹은 영웅적 대상의 기록화가 거의 전부가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따라서 스스로의 자아의식을 그려낸 자화상이란것이 생산되지도 남아있지도 않아 이를 접하는것이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의 그림 중 자화상으로 단연 최고로 치는 독특한 그림이 있다.
이즈음 되면 우리의 인물화 중 가장 으뜸으로 손꼽히는 선비화가 윤두서(1668~1715)의<자화상>(국보 240호)이 떠오를 것이다. (그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의 지은이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실학자 정약용의 외할아버지이기에 더욱 주목 받을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살아생전 모습을 담은 최고의 자화상은 모나리자의 그것과 같이 증명할 수 없는 독특한 마법과 수수께끼로 이름 높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는 배경도 없으며 화면 한가득 자신의 얼굴로 채워져 있다. 이는 그의 자의식이 강하게 투영되어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 그의 사실적인 자화상의 그 부리부리한 눈매는 숨겨진 우리의 깊은 내면을 망설임 없이 꿰뚫어버린다. 혹여 그 앞에선 한 치의 거짓이 있었다간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아 당장 관객의 몸도 마음도 올곧게 바르도록 추스리게 하기 충분하다.
양나라의 양승요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하였으며, 사람이 가진 눈은 사람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하였던 고개지도 있었다.
한 올 한 올 살아 휘날리는 수염으로부터 얼굴로 이어지는 필선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섬세하여 실제 살아있는 한 사람을 대하는 듯 한데,
"터럭 한 올이라도 같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다." (一毫不似便是他人)
라고 하였던 그의 자화상은 사진 보다 더욱 정교하고 세밀하여 심지어 콧털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사실성으로 경이로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잘 짜여진 정확한 좌우대칭과 매우 단정한 이미지, 탕건 끝의 부드러운 곡선은 머리 전체의 볼륨을 요령있게 처리하고 있다. 그의 사실성 속엔 스스로의 심성과 정신을 분명히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녹아 스며있다 하겠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마치 미완으로 끝맺음하여 긴 여운으로 남으려는 듯 빈 허공의 자리에 덩그러니 얼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얼핏 보면 공중에 얼굴만 떠 있는 형상이다.
그토록 사실적인 세밀한 묘사를 우선시 하였던 그의 화풍에서 이렇듯 과감한 빈 여백으로 마무리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면 어떤 사건이 얽혀있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미스터리처럼 좀체 풀리지 않는 이 화두 "왜 공재 윤두서는 그의 몸을 그려넣지 않았을까?"였다.
이를 두고 각계각층에서 연구를 통해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이를 명확히 종지부 할 어떤 실마리도 풀지 못했기 때문에 이 그림은 그 어떤 인물화 보다 더욱 미스터리한 미궁으로 우리에게 남겨져 왔던 것이다.
허공에 목만 덩그러니 떠 있는 유교적 미의식에 위배되는 엽기적인 그림 한 장.
하지만 불과 몇해 전 놀라운 발굴로 인해 새로운 미술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매스컴에 안내된 조사 내용을 들여다 보자.
당시 대두되었던 또 하나의 추론은 1996년 미술사가 오주석의 발굴해의해 알려졌는데, 이 윤두서의 자화상은 원래 그려질 당시엔 온전한 형태였다는 것이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1937년 조선총독부가 펴낸<조선사료집진속>에 남아있는 그림과 비교했을 때 이 자료집에는 상체의 모양이 뚜렷하게 남아있으나 현재의 볼 수 있는 윤두서 그림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오주석에 따르면 "원래 윤두서의 자화상은 밑그림을 그릴 때 쓰는 유탄으로 화면 위에 상체를 그렸다가 미처 먹선으로 다시 그리지 않은 채 미완성 상태로 전해졌다."고 추정했다. "후대 표구하는 과정에서 표면을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라는 견해였다.
또는 이 부분이 유실된 것이 아니라 이 그림을 촬영할때 조명을 뒤에서 비추어 희미한 몸체의 윤곽 더욱 선명히 남게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근래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용산 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위해 윤씨 종가에서 빌려온 액자 형태의 이 그림을 처음 과학적으로 분석하게되었는데 적외선 투시 분석과 현미경을 통해 도포의 옷 주름의 선명한자국과 양쪽 귀 또한 희미하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적외선 투시로 선명한 자국은 찾을 수 있었으나 현미경을 통해 작품에 그려진 일관된 선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앞면에 그린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뒷면에 그렸거나 유탄으로 스케치만 하고 미완성된 작품이거나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실재 배접의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훼손을 막기위해 뒷면에 덧대어져 있으므로 실재 이를 뜯어내고 조사하기란 불가능한 상태이다.
어쨌거나 실재 그려진 것이 사실임에는 틀림없으나 아직도 이렇다할 결론에 이르지 못한건 기정 사실이다.
또 한 재미있는 것은 연백과 진사 안료를 써서 그린 양쪽 귀의 윤곽이 현미경으로 관찰되었고, X선 분석 결과 선으로만 그려졌다는 종래의 견해를 뒤집고 안면과 몸체, 탕건과 귀 부분, 도포는 전체가 흰색으로 은은하게 배채기법으로 채색되어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젖은 종이를 여러장 겹쳐 두드려 한장의 종이로 만드는 도침(搗砧)법을 통해 뒷면에 칠한 색감을 투명하게 비치도록하였다고 추정하였다.
그러면 이 작품은 결국 유탄으로 스케치 한 후 미처 채색하지 못한 미완성의 작품이라는 것인데 사실 그렇게 놓고보면 이 작품이 초본이라 하기에는 그 완성도가 매우 높아 의구심이 드는것 또한 사실이며, 또 그렇다하여 유교적 미의식 하에 제작된 작품이 의도적으로 비워둔 여백이라는 것에도 쉽게 공감할 수 없는것이 사실이다.
결국 뒷면을 뜯어내어 진위를 가리려하는 것 또한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미술에 대한 보다 쉽고 재미있는 접근 방법은 어디 없을까.
윤두서가 왜 이런 자화상을 남겨 놓은지는 미궁이지만 그의 자화상은 뿌리없이 허공에 떠도는 형상으로 우리 앞에 있으며 내일도 변함없이 그럴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역사의 뿌리를 잃고 외래 문화에 환호하며 과거의 재산은 주머니 쌈짓돈 즈음으로 치부해버리는, 뒤는 없고 앞으로만 달려나가는 맹목적인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은 아닐까. 혹은 그의 자화상에 숨어든 몸과 같이 우리의 표류하는 현실이 영혼처럼 우리네 삶이 투영된 거울의 반영은 아닐까.
"네 이놈. 어찌 그리 사느냐!"
그렇게 긴 세월 거스르면서도 윤두서는 부릅뜬 두 눈으로 세상의 부정과 비리, 선과 악의 모호함 속에 깨끗하고 당당하라 오늘날 꾸짓어 온다.


